바다는 더 이상 푸르지 않다.
이제 그곳엔 해파리보다 비닐봉지가 많고, 조개보다 플라스틱이 많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이 심각한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다양한 대응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 실효성은 나라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오늘은 유럽의 선도적인 규제 사례, 대한민국의 현재 대응 전략, 그리고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현실과 과제를 비교하며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살펴보자.
유럽연합(EU), 플라스틱과 전쟁을 선포하다
▪︎ 강력한 플라스틱 금지 조치
유럽연합(EU)은 2019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ingle-Use Plastics Directive)’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플라스틱 규제를 실행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라 2021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일회용 빨대, 컵 뚜껑, 면봉, 식기류 등 주요 플라스틱 제품이 금지되었으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만 허용된다.
- 플라스틱 제품 자체에 라벨링 의무화 (해양 오염 유발 가능성 표시)
-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업체에 오염 책임 세금 부과
- 2025년까지 플라스틱 병의 77% 회수, 2030년까지 90% 회수 목표
✅ EU는 "오염자는 비용을 지불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적용하고 있다.
▪︎ 해양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
유럽은 단순히 규제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는 해양쓰레기 공동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 'Marine Litter Watch'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이 직접 쓰레기를 기록하고
데이터를 제공해 해양 쓰레기 발생지를 추적하고 공유한다.
또한 EU는 해양 청소, 어망 회수, 해양 재활용 기술에 수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정책 → 시민 참여 → 기술 투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다.
대한민국, 미세 플라스틱 대응은 ‘이제 시작’
한국은 해양 쓰레기 문제에 있어서 그간 “수거 중심” 대응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세 플라스틱과 해양 플라스틱의 심각성이 대두되며 조금씩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 미세 플라스틱 정책 전환
- 2022년 “미세 플라스틱 관리 종합대책” 발표
- 생활 속 주요 발생원으로 ▲세탁기 섬유, ▲타이어 마모, ▲치약·화장품 마이크로비즈 등을 지목
- ▲미세플라스틱 정의 기준 마련, ▲측정 기술 개발, ▲하수처리장 고도화 예산 반영
하지만 강제성 있는 규제는 부족하고, 여전히 "민간 자율 협약"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 해양쓰레기 수거 정책
- 해양수산부 주도 ‘바다 청소선’ 29척 운영
- 매년 해양쓰레기 수거량 약 10만 톤 이상 처리
- ‘어업인 참여 수거보상제’ 및 ‘어구 회수사업’ 등 확대
그러나 플라스틱 쓰레기의 발생 자체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도입되었지만, 시행 지연과 업계 반발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1위권(연간 약 88kg),
재활용률은 20%대로 낮은 편이다.
아시아, 세계 최대의 해양오염 발생지
세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약 80% 이상이 아시아 국가에서 배출된다는 통계가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은 ‘Top 5 해양 오염국’으로 꼽히며 국제 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 구조적 문제
- 하수처리 시설 미비
- 비공식 쓰레기 매립지에서 직접 바다로 쓰레기 유입
- 저소득층의 비공식 재활용 노동시장 존재로 통제 어려움
예를 들어, 필리핀 마닐라만은 세계 최대 규모의 플라스틱 유출 지역 중 하나다.
하천 주변에 무단 폐기된 플라스틱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간다.
🌊 2021년 The Ocean Cleanup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의 44%는 아시아 10개 강에서 유출된다고 분석됐다.
▪︎ 대응 한계와 국제 협력 필요
일부 국가는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정책을 도입했지만,
- 집행력 부족
- 대체재 부재
- 법 위반에 대한 처벌 미약
등의 이유로 실질 효과는 제한적이다.
국제 NGO, UN 환경계획(UNEP), 세계은행 등이 개입하여
플라스틱 쓰레기 추적 플랫폼, 해양 정화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국가 차원의 의지와 정책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마무리: 규제가 아닌 선택이라면, 미래는 없다
바다를 보호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유럽은 그 의무를 ‘법’과 ‘참여’로 구현하고 있고,
한국은 이제 막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으며,
아시아 일부 국가는 여전히 개인의 생계와 환경이 충돌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문제를 인식하고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국가의 태도다.
환경 문제를 정치 논리로만 접근하거나 산업 보호를 이유로 미루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국가는 바다를 버릴 수 있어도,
우리는 그 바다에서 물고기를 먹고, 공기를 마시며 살아간다.
이제 각 개인이 바다를 지키는 감시자이자 행동가가 될 차례다.